5월 21일...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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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무 작성일25-05-21 19:55 조회38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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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혁명정부의 교회 박해
오늘날 멕시코는 대표적인 가톨릭국가다. 브라질 다음으로 가톨릭신자가 많은 나라로 멕시코의 가톨릭신자는 약 1억 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불과 100여 년, 무신론으로 무장한 멕시코의 혁명정부는 가톨릭교회를 박해했다.
1917년 헌법을 개정하고 국가와 종교의 분리라는 미명 아래 반가톨릭적인 조항을 삽입한 혁명정부는 토지개혁을 명분으로 교회의 토지와 재산을 몰수하고 교회의 교육 사업을 막는 등 가톨릭교회의 활동을 억압했다.
당시 혁명정부 지도부는 가톨릭교회를 악의적으로 조롱하고 억압했다. 공공건물과 묘지에서 십자가를 없앴고. 모든 가톨릭 사제를 추방시켰다. 20세기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며 악의적으로 멕시코의 가톨릭교회를 초토화시켰다.
멕시코 혁명정부는 공공장소에서 수단을 입은 사제에게 벌금을 물리고, 정부를 비방하는 사제에게는 최대 5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외국 선교사들은 모두 추방됐고, 성당과 교회가 운영하던 학교, 신학교들은 문을 닫아야했다.
당시 사제들은 아무 이유 없이 살해됐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크리스테로 전쟁’(1926~1929)을 벌였다. 처음에는 평화로운 저항운동이었지만, 교회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고 사제들이 살해되자 무력충돌로 이어졌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교황청과 미국의 중재로 교회와 멕시코 정부는 휴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부는 이후로도 10년 동안 사제들을 비롯해 크리스테로 전쟁 참가자들을 암살했다.
휴전 이후 1940년 가톨릭교회에 우호적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살해된 이들이 약 5,500명에 이른다. 교회의 피해는 참담했다. 1926년부터 1934년까지 최소 40명의 사제가 암살됐다. 4500여 명에 이르던 사제 수는 1934년에는 334명만 남았다. 나머지 사제들은 추방되거나 제명되거나 죽었다.
성 크리스토발 마가야네스 하라와 동료 순교자 24위는 크리스테로 전쟁 당시 교회의 억압에 맞서 목숨바쳐 저항한 이들이다. 하라 신부는 교회 단체들이 무력으로 정부에 대항하는 방식에 반대하며 많은 저술과 설교를 통해 무장세력을 설득했다. 그러나 하라 신부와 코르테스 신부는 체포되었고 재판도 없이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는 “나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이들을 용서하며, 주님께서 내 피를 분열된 멕시코의 평화를 위해 흩뿌리기를 바란다”는 유언을 남겼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2년 이들을 시복했고, 대희년이던 2000년 5월 21일 이들을 모두 시성했다. 성 크리스토발 마가야네스 하라와 동료 순교자들은 하느님에 대한 성실한 믿음과 가톨릭 신앙에 충실했던 자세로 오늘날 전 세계 모든 교회와 특히 멕시코 사회에 큰 모범이 되고 있다.
...가톨릭 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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