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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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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무 작성일23-11-11 10:19 조회1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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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티노는 316년경 옛날 로마시대 고올 지방(지금의 헝가리사바리아라는 곳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부친은 로마군 대령으로서 이탈리아의 파비아라는 곳에서 근무하다가 헝가리에 전임되어 사바리아 시에서 근무하였다.

 

마르티노는 로마에 유학하면서 천주교를 알게 되었고수도자가 되기를 갈망하였으나 부친은 15세 아들을 군에 입대시켰다. 18세가 되었을 때 세례를 받고, 23세가 될 때까지 군복무를 하였다. 그는 천주교 신자가 되면서 전투를 거부하고 군인 신분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후 그는 충실한 신앙생활을 위해 군대를 사퇴하고 프랑스 북부의 도시 프와티에로 가서 그곳의 주교였던 성 힐라리오를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고 사제로 수품되었다. 이후 선교에 힘을 쏟지만 그 당시 이단인 아리우스파의 미움을 받아 그들에게 잡혀 형벌을 받고 추방까지 당하게 된다. 

 

그에게 사제 서품을 주었던 힐라리오 주교는 아리우스파 황제 콘스탄티누스 2세에 의해 추방되어 일리아 지방에서 활동하였는데 마르티노는 수도생활을 하다가 힐라리오 주교가 주교직에 복귀하였을 때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360~361년경 힐라리오 주교로부터 리지외에 토지를 받고 그곳에 수도원을 세우는데 이것이 프랑스 최초의 수도원이자 서양에서도 가장 오래된 수도원 중의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

 

마르티노는 그 후 투르의 주교가 죽자 주민들의 간절한 요청을 받아들여 371년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54세에 주교직에 오르고 30년을 주교로서 재임하는 동안 마르티노 주교는 훌륭한 설교로 수많은 우상 숭배자들을 하느님의 품으로 끌어들였다. 특히 그는 이단자들의 처형에 대해 설득과 관용의 정신으로 대하였는데그들을 관용의 정신으로 옹호하다가 한때는 이단자로 몰리기도 하였다. 

 

이렇게 성스러운 생활로 열심히 사목을 하던 마르티노는 80세의 고령으로 캉드 지방을 방문하던 중에 병을 얻어  397년 11월 11일 선종하였다. 마르티노 주교의 죽음이 전해지자 전 국민이 애도의 뜻을 표하는 동시에 마르티노 주교를 공경하였던 프와티에와 투르의 양 지방은 성인의 유해를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까지 벌일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명성을 얻었고순교자가 아니면서도 성인이 된 최초의 인물이다. 

 

그가 군인이었을 때, 몹시 추운 어느 날,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면서 성문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거지를 만났는데  마르티노는 망설임 없이 칼을 뽑아 자기 망토를 두 쪽으로 잘라 하나는 거지에게 주고 다른 한쪽은 자기가 걸쳤다. 

그날 밤 꿈속에서 마르티노는 자기가 거지에게 준 망토를 걸친 예수님이 나타나  "아직 예비자인 마르티노가 이 옷으로 나를 입혀주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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