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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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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무 작성일23-07-15 05:56 조회2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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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보나벤투라는 프란치스코회 수사였던 추기경입니다. 또 토마스 아퀴나스와 더불어 중세 시기의 교회 신학계에서 雙壁을 이룬 인물입니다. 

 

이탈리아 중부의 산골짜기 마을인바뇨레조에서 1217년 태어난 그의 본명은 조반니 디 피단차였습니다. 보나벤투라는 어릴 때 큰 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했었는데, 신심이 깊은 그의 어머니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 데리고 가서, 만약 완쾌되면 수도원에 보내겠다는 서약을 하며 기도와 강복을 청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프란치스코도 기뻐하며 “오! 보나벤투라”, 오, 기쁜 일이여 라고 외쳤고, 즉시 병이 나았는데 이때부터 그의 이름이 보나벤투라로 불렸다고 합니다.

 

17세 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한 그는, 1238년에 당대 유명한 학자인 할레의 알렉산델에게서 배우려고 파리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그의 총애를 받는 제자가 된 그는, 1248~1255년까지 신학과 성경을 가르쳤는데, 이때 토마스 아퀴나스도 같은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보나벤투라는 이 시기에 사람들의 정신을 지혜롭게 밝혀주며, 마음을 훈계하고, 하느님의 사랑에까지 이르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토마스 아퀴나스가 찾아와서는 “어디에서, 어떻게 그런 지혜를 배웠습니까?”하고 묻자, 그는 십자가를 보여주면서 “이것이 나의 지혜의 샘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보나벤투라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명성이 알려지자 여러 나라에서 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교수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일부 교수들의 반발로 그들은 정식 교수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교황 알렉산데르 4세의 개입으로 1257년 8월 교수가 되었지만, 그해 2월에 이미 프란치스코회의 총장이 되었기에 교수직은 중단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회의 총장이 된 직후 수도회 설립자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전기 편찬에 착수하여 만든 《성 프란치스코의 대전기 :1260​ 》 는  이후 700년간 수백 판을 거듭하여 출판되었고 각국어도 번역되었습니다. 이 전기를 집필할 때 토마스 아퀴나스가 자신의 제자와 함께 그를 방문하였답니다. 

 

방문을 두드렸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그는 책상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세로 탈혼한 상태였답니다. 이것을 본 토마스는 “성인이 성인의 행적을 쓰는 데 방해해선 안 된다.”라며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1260년에 그는 성 프란치스코가 정한 규율을 엄격히 지키도록 하기 위해 직접 모범을 보이며 필설로 부드럽게 설득하고 각 수도원을 순방하며 시찰하였습니다. 1273년 5월에 교황 그레고리오 10세(1271~1276)는 리용 공의회의 준비를 위해 그를 알바노의 추기경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황 사절에게 이 사실을 빨리 알리라고 빨간 모자를 보나벤투라에게 직접 전해주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빨간 모자를 전달하려고 수도원에 도착해보니, 보나벤투라는 수도자들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활짝 웃으면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빨간 모자를 들고 온 교황 사절을 힐끗 훑어본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죄송하지만 지금 제가 설거지 중입니다. 잠시 후면 끝나니, 그동안 그 빨간 모자를 나무에 좀 걸어두시겠어요?”라고 했답니다. 

 

그는 성모님을 열심히 공경하였는데, 매주 토요일마다 수도원 부속 성당에서 성모 신심 미사를 봉헌하였고, 저녁종이 울릴 때마다 성모송을 외우며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수사들에게 이것을 신자들에게 장려토록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삼종 기도의 시작이었습니다. ​

 

1274년에 동방 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열심히 활동한 보나벤투라는 쌓인 피로로 결국 쓰러졌고 교황에게서 병자성사를 받고 7월 14일 리용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482년 교황 식스토 4세가 그를 시성하였고, 1588년에 교황 식스토 5세는 그를 “세라핌적 박사” 란 칭호와 교회 학자로 선언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지혜는 하느님을 더 사랑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하였고, “우리 지능을 밝히는 빛이 우리 마음까지 감동시키지 않으면 효과가 없는 빛이다.”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면동성당 주임신부님 강론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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