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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나무 작성일22-06-11 09:03 조회927회 댓글0건

본문

 

바르나바(6.11) 기본정보

성인명바르나바 (Barnabas)
축일6월 11일
성인구분성인
신분사도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61년경
같은이름바르나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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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으로 극찬을 받은 

성 바르나바는 비록 12사도단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초대교회 때부터 이미 

사도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는 원래 키프로스(Cyprus) 태생의 레위인으로 요셉(Josephus)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그는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 자신이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에게 봉헌하였다. 이때 사도들이 그에게 ‘위로의 아들’이란 뜻으로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사도 4,36-37).


   그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초기 신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살았다. 

그는 그곳의 공동체를 설득하여 박해자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울, 즉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를 다른 사도들과 예루살렘 공동체가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었다(사도 9,26-28). 

그리고 첫 순교자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12월 26일) 부제의 순교 이후 박해를 피해 

흩어진 이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룬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로 파견되어 

그곳의 공동체를 둘러보고 격려하였다. 

 

또한 타르수스(Tarsus)로 가서 사울을 찾아 안티오키아로 데리고 왔다(사도 11,19-26). 

그는 성 바오로와 함께 큰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는 예루살렘 공동체를 위해 

안티오키아 형제들의 기부금을 전달했고(사도 11,27-30), 맡은 바 사명을 수행한 다음 

그의 사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Joannes Marcus)을 데리고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안티오키아 교회는 성령의 이끄심으로 성 바르나와 성 바오로를 키프로스 선교를 위해 파견하였다.

요한도 조수로 함께 했다. 이 세 사람은 키프로스의 살라미스(Salamis)에서 복음을 전한 뒤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갔고, 

이때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성 바오로와 성 바오로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도착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으나 이를 시기한 유다인들로부터 맹렬한 반대를 받았다. 

 

결국 그들은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배척했기에 자신들은 다른 민족, 곧 이방인들에게 간다고 선포했다. 

유다인들의 반대로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쫓겨난 성 바르나바와 성 바오로는 

리카오니아(Lycaonia) 지방의 이코니온과 리스트라로 가서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 

 

여기서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신으로까지 인정받았으나 유다인들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해 돌 세례를 받고 

도시 밖으로 쫓겨났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 용맹히 복음을 전한 성 바르나바는 

성 바오로와 함께 안티오키아로 돌아와 그동안의 일을 보고하였다(사도 13-14장).

   비유다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면서 그들도 모세의 율법에 따라 할례와 같은 예식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논쟁이 일었다. 이에 예루살렘에서 사도회의가 열렸고, 성 바르나바와 성 바오로도 

안티오키아 교회의 대표로 참석하여 그동안의 활동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사도단의 결정을 가지고 안티오키아로 돌아와 기쁜 소식을 공동체에게 전했다.

며칠 뒤에 성 바오로는 성 바르나바에게 이전에 복음을 전한 고을을 돌아보자고 했고, 

성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를 데려가자고 했다. 

 

하지만 성 바오로가 팜필리아에서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이를 함께 데려갈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감정이 격해져 서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성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떠났고, 

성 바오로는 성 실라스(Silas, 7월 13일)와 함께 시리아와 킬리키아의 여러 곳을 두루 다녔다(사도 15장). 

이후 사도행전에서 성 바르나바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지만, 

후에 성 바오로와는 화해한 것으로 보인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성 바르나바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와 로마(Roma)에서도 복음을 전했고, 

키프로스 교회의 설립자로 인정받으며 활발히 선교하다가 61년경 살라미스에서 

돌에 맞아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대교회 문헌인 “바르나바의 편지”는 당시 교회 생활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그의 작품은 아니고 

후에 그의 이름으로 헌정된 것이다. 현대의 성서학자들은 70년과 132년 사이 알렉산드리아의 한 신자가 쓴 것으로

보고 있다. 485년 제노 황제 때 살라미스에서 성 바르나바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성인의 가슴 위에 손수 기록한 마태오 복음서 사본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는 키프로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가톨릭 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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