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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와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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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무 작성일21-09-30 14:38 조회2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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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과일의 대명사 포도는 우리나라 순교자들과 관련이 깊은 과일이다. 우리나라에서 포도를 재배해 처음 서양식 포도주, 바로 와인을 주조한 이도, 포도 과수원을 만들어 최초로 상업적으로 재배한 이도 모두 순교자들이었기 때문이다.


1795년 주님 부활 대축일, 복자 주문모(야고보) 신부는 신자들과 함께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했다. 우리나라에서의 첫 미사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미사에서 쓰인 미사주는 바로 복자 윤유일(바오로)이 직접 재배해 담근 와인이었다.

윤유일은 1789년 10월 중국을 오가는 상인으로 위장하고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를 찾아갔다. 조선교회의 상황을 보고하고 조선교회에 성직자 파견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윤유일의 방문에 감명받은 구베아 주교는 성직자 파견을 약속하고, 조선에 성직자를 파견하는 데 필요한 준비 사항도 알려줬다. 이때 구베아 주교는 미사에 필요한 도구들과 포도나무 묘목, 재배법도 함께 전했다.

당시 조선에는 이미 포도가 전래됐던 것으로 보인다. 16세기 조선의 농서에 포도가 소개되기도 하고, 1700년대 문헌인 「양주방」(釀酒方)에는 누룩과 밥, 포도즙을 섞어 포도주를 담그는 방법도 기록돼 있다.

그러나 서양식 와인을 만든 조선인은 윤유일이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교회 전례규정에 따라 미사주는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포도로만 빚어야 한다. 이에 구베아 주교는 윤유일에게 포도로만 술을 담그는 방법을 가르쳐줬을 것으로 추정된다. 1795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사 봉헌을 위해 직접 주조한 와인을 봉헌한 윤유일은 같은 해 6월 28일 순교했다.

과수원을 만들어 포도를 상업적으로 처음 재배한 이는 하느님의 종 공베르 앙투안 신부다.

공베르 신부가 포도 재배를 시작한 것도 미사를 위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특히 1900년 안성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공베르 신부는 미사주를 만들기 위해 텃밭에 심은 포도나무가 잘 자라나는 것을 보고, 가난한 지역민의 자립을 위해 포도농사를 짓기로 결심했다. 

이후 공베르 신부는 안성의 토질과 기후에 맞는 포도종자를 찾고 재배법을 익히기 위해 32차례나 프랑스를 오갔고, 안성에서 포도 재배를 시험했다.

포도 재배가 성공적으로 이뤄지자 공베르 신부는 모국인 프랑스에서 모아온 기금으로 성당 주변 토지 50만 평을 매입했다. 공베르 신부는 이 땅을 가난한 지역민들에게 빌려주고 포도 농사법을 전수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안성 포도’의 시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포도농사법을 전한 공베르 신부는 1950년 7월 11일 북한군에 체포돼 납북됐고, 그해 11월 12일 중강진에서 순교했다. 

....가톨릭 신문에서 옮김....  

윤유일 바오로  ( 1760-1795)  
경기도 여주 출신, 권일신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예비 신자였던  그는 1789년, 북경 주교에게 보내는 이승훈과 권일신의 밀서를 전달하기 위해 동지사 일행으로 북경에 들어 가 임무를 완수했으며  그 이듬 해  다시  사제 파견을 요청하는  밀서를 가지고  북경에 가서 세례와 견진 성사를 받았다 
1794년 주문모 신부가 입국할 때에는 지황과 더불어  의주 변문으로  가서 주신부의 입국을  돕고 12월 24일  무사히 서울로 안내하였다  
그는 주문모 신부를 인도한 죄로 1795년 6월 28일 체포되어 주문모의 거처를 대라는 추궁에 입을 열지 않았고 모진 고문과 매를 맞은 끝에 그날로 옥중에서 참수, 순교하였다.  

공베르 孔安國, Antonius Gombert 신부 :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1900년 안성 본당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한 공베르  신부는 31년 동안 안성 본당에 재임하면서  한국 민족을 깊이 사랑한 선교사이다. 

1909년 안성의 젊은이들을 교육 시키려고 안법학교를 세웠는데  안은 안성에서, 법은  당시 프랑스의 호칭이던 법국에서 따온 것이다. 1912년에는 안법학교 여자부도 신설해서  사르트르 성바오로회 수녀 2명을 초청하여 여학생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1919년 삼일 만세 운동 당시에는  성당으로 피신한 사람들을 보호해 주어  서양 종교를 배척하던 안성 사람들은 천주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고 공베르 신부를 존경하게 되었다.  

또한  동생  공베르 줄리앙 신부와 함께 프랑스에서 포도나무를 가져와 성당 뜰에 심어서  현재 안성 포도로  성장시켰다.  

1950년 한국동란 때 서울에 머물던  신부님은  피난을 못가고  북한 군에 납치되어 1950년 11월 감옥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음을 맞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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