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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열일곱 번째 서한 살펴보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나무 작성일21-08-29 10:19 조회1,402회 댓글0건

본문

   

 

 발신(작성)일

 발신(작성)처 

 수취인 

  수취일 

 비고

 첫 번째 서한

 1842. 2. 28

 마닐라

 르그레즈와

 미상

 

 두 번째 서한

 1842.5월경 

 주산

 리브와

 미상

 유실

 세 번째 서한

 1842.9월경 

 상해

 리브와

 1842. 9.27

 

 네 번째 서한

 1842.12.9

 요동 백가점 

 르그레즈와

 1844. 2.27

 

다섯 번째 서한 

 1942.12.21

 요동 백가점

 리브와 

 1843. 10.9

 

여섯 번째 서한 

 1843. 1.15

 요동 백가점

 르그레즈와

 1844. 2.27

 

일곱 번째 서한 

 1843. 2.16

 요동 백가점 

 리브와 

 미상

 

여덟 번째 서한 

 1844. 5.17

 몽골소팔가자 

 리브와

 1844. 9.29

 

아홉 번째 서한 

 1844.12.15

 몽골소팔가자

 페레올 

 미상 

 

 열 번째 서한 

 1845. 3.27

 서울돌우물골 

 리브와 

 1845.10.14

 

 열한 번째 서한 

 1845.4.6

 서울돌우물골 

 리브와

 미상

 

 ​열두 번째 서한 

 1845.4.7

 서울돌우물골

 리브와 

 미상

 

 열세 번째 서한 

 1845. 6.4

 상해 

 리브와

 1845.7.23

 

 열네 번째 서한

 ​1845. 6. 4

 상해

 페레올

 1845.7.23

 

 열다섯 번째 서한

 1845.6.

 상해

 고틀랑 

 미상

 유실

 ​열여섯 번째 서한

 1845.7.23

 상해

 리브와 

 ​1845.10.14

 

 조선순교사와 순교자 들에 관한 보고서

 1845,3~4월 작성   7.23발송 

 서울 돌우물골

 (상해)

 리브와

 ​1845.10.14

 

 열일곱 번째 서한

 ​1845.7.23

 상해

 페레올

 1845.10.14

 

 



< 열일곱 번째 서한 작성 배경> 


​열여섯 번째 서한 추신에 "페레올 주교님께 간단한 편지를 쓰겠습니다" 라고 한대로 열일곱 번째 서한은 김대건 부제와 11명의 교우가 1845년 4월 30일 제물포를 떠나 6월 4일 상해에 도착한 후 그간의 사정과 조선 교회의 실상을 페레올 주교에게 간략하게 보고하는 내용이다. 


이 서한을 발송한 다음, 1845년 8월 17일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는다.


"김대건이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배를 타고 상해로 왔다는 소식은 선교사들에게 놀라움과 기쁨을 주었다. 페레올 주교는 크게 감동하여 김대건 부제에게 사제 서품을 주기로 하였다. 


1845년 8월 18일 상해 푸동 지역에 있는 김가항(金家港) 성당에서 조선 신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대건은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제 서품 후 1845년 8월 24일 다블뤼 신부를 복사로 하여 횡당(橫堂)신학교 성당에서 첫미사를 봉헌했다.   


김대건 신부는 조선으로 귀환하기 위해 타고 왔던 배를 수리하여 '라파엘 호'라고 명명하고  1845년 8월 31일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등과  함께 출항 하였으나 날씨가 나빠서 양자강 하구에 있는 숭명도 (崇明島)에 정박, 순풍을 기다린 후 9월 8일 조선으로 다시 항해를 시작하였다. 


조선으로  항해 도중에도 폭풍우를 만나 키가 부러지고 돛이 찢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강한 역풍을 만나 9월 28일 제주도 서쪽인 비양도(飛揚島​)에 표착하였다. 그 곳에서 잠시 머문 라파엘 호는 다시 출발하여 10월 12일 충청도 강경 나바위에 도착하였다."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발췌)


이로써 김대건 신부는 서해 해로를 통해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를 조선으로 맞아 들이는 데 성공하였으며 이 내용은 열여덟 번째  서한에  다시 소개 된다. 


 

      <참고>


김가항 성당https://youtu.be/hYji6vH9MPc 

동영상을 재생하면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김대건 신부가 서품 받았던 김가항 성당은  상해시 개발  계획에  따라 철거되었고  2005년에 원 위치에서 1km 떨어진 곳에 성당과 김대건 신부의 경당이 재건되었다.  본래의 성당 구조물을 한국으로 가져와 보관하다가 2016년 은이공소에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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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은이 성지에 복원된 김가항 성당)

 

 횡당 성당 : 김대건 신부가 첫 미사를 봉헌한 성당.

 규모는 작았으나 1840년대부터 신학교, 고아원 등이 운영되던 곳

 1966년 중국 문화대혁명으로 심하게 훼손되었다가 1980년 상해 교구로 반환   되었다.  현재는 한국에서 제작된  성 김대건 동상,성모자상 등이 봉헌돼 있다.                

           ​

라파엘 호 : 길이 13.5m  너비  4.8m 높이 2.1m의  작은 배로  

             여행자들의 수호 성인인 라파엘 천사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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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나바위 성지에 복원  전시 된 라파엘 호)


다블뤼 신부(1818-1866)

파리 외방전교회의 선교사이며 천주교 조선교구의 제5대 교구장
다블뤼는 부르주아 계급 출신으로  천주교 사제가 되기를 원하여
생 쉴피스 신학교에 입학, 1841년-1843년 까지 본당 사제로 사목한 뒤,
파리 외방 전교회에 입회하였다

1844년  6개월의 여행 끝에 마카오에 도착하였고 제3대  조선교구장인 페레올 주교가 김대건 신부와 함께 한국으로 와 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상해에서  라파엘 호를 타고  갖은 역경을 겪으며  충청남도의 강경에 도착하였다.

다블뤼는 1846년 조선에서 사목을 시작하여 2년 만에 1700명에게 세례를 주는 등 활발한 사목을 하였으며.건강이 안좋은 상태에서도 라틴어를 가르치고
한중불사전 편찬에도 기여하였다

또한 한국의 초기 천주교 전래와 박해에 대한 자료들을 광범하게 모아 파리로 보내서  달레가 지은 〈조선교회사〉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1857년 교우집에서 주교 서품을 받고 조선 부교구장이 되었다가
1866년  병인박해 때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가 3월 순교한 후 

그 뒤를 이어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이 되었지만 20여 일 만에 갈매못에서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와 장주기, 황석두와 함께 참수되었다.


1968년  로마에서 시복식, 1984년 서울에서 시성 됨 



베시 주교 (1805-1871) : 이탈리아 프란치스코회   소속  

                             산동 대목구장 겸 남경 교구장 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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