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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번째 서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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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무 작성일21-08-24 13:47 조회1,3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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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번째 서한

 

리브와 신부님께

(상해에서),1845년 7월 23일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

저는 모든 준비를 끝낸 후 11명의 교우와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그들 중에서 4명만이 사공이었고 나머지는 바다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모든 것을 비밀리에 또 급히 추진하다 보니 유능한 사공을 구할 수 없었고 그 밖에 아주 필요한 물건들도 놓고 왔습니다.

 

이리하여 음력 3월 24일(양력 1845년 4월 30일) 돛을 펴고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교우들은 바다를 보고 아주 놀라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서로 물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어디로 가느냐고 감히 묻지를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는 일에 누구든 질문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하루는 순풍을 따라 항해하였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비를 동반한 큰 폭풍우가 일어나 사흘 동안 밤낮으로 계속되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30척이 넘는 강남(상해) 배들이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배는 바다에 나가 본 적이 없는 작은 배였는데, 비바람이 거세지자 배가 파도 때문에 몹시 흔들리고 무섭게 이리저리로 내던져져서 침몰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본선으로 끌고 오던 종선(從船)을 끊어 버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래도 위험이 계속되었으므로 결국 우리는 두 돛대를 다 베어 버리고 식량까지 바다에 던져 버려야 했습니다.

 

그러자 배는 짐의 부담이 조금 덜어지기는 하였으나 거대한 파도 가운데서 비바람이 부는 대로 사방으로 내던져졌습니다. 교우들은 사흘 동안 먹지 못하여 극도로 쇠약해졌고 또 삶에 대해 절망하여 슬퍼져서 울며 “이제는 끝장이다. 살아날 수 없을 거야.”라고들 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하느님 다음으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신 성모 님의 기적의 상본을 보이면서 “겁내지 마십시오. 우리를 도우시는 성모 님이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말로 될 수 있는 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저도 신병 중이었지만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으면서 일을 하며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제가 으뜸 사공으로 채용한, 이미 예비 신자인 외교 인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배의 키가 거센 파도에 부러져 나갔습니다. 그러자 배가 바람과 파도의 충격으로 대양으로 밀려 나갔습니다. 그래서 돛들을 묶어 바다에 던지고 단단히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줄들이 끊어지면서 돛들이 떠내려갔습니다. 이어 나무토막들을 함께 멍석에 묶어 파도를 향해 던졌는데 다시 떠내려가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인간적인 도움을 잊고 오직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기대를 걸고 잠을 자기 시작하였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비도 그치고 바람도 약해져 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자 우리는 기운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음식을 들고 주님 안에서 희망을 갖자고 하였습니다.

 

원기를 회복한 후 우리는 항해를 계속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돛대도, 돛도, 키도, 종선도 없었으므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지극히 영화로우신 우리 동정 성모 님께 굳게 의지하고 배에 남아 있던 나무들을 다 거둔 다음 돛대들과 키를 만들었습니다.

 

역풍이었으나 닷새가량 항해한 뒤 우리는 강남땅 해안에 도착하였고, 산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돛대도 약하고 또 항해에 필요한 물건들도 부족해서 상해까지 갈 수가 없어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인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아니면 적어도 길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종선이 없어서 우리가 그들에게 갈 수 없고 그들도 우리에게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도리어 우리를 피해 도망갔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인간적인 도움의 희망을 잃은 채 오직 하느님의 도우심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뜻밖에 산동 배 한 척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배는 우리를 보더니 겁을 먹고 지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기를 흔들고 북을 치면서 그 배를 불렀습니다. 처음에는 오려고 하지 않더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는지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배로 올라가 선장에게 인사하고는 우리를 상해까지 끌고 가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저의 설명도 간청도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와 함께 산동으로 가서 관례에 따라 북경을 거쳐 조선으로 귀국하도록 저에게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북경으로 해서 귀국하고 싶지는 않고 배들 고치기 위해 반드시 상해로 가야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1천 원(즉 l000 pataca)을 주겠다는 약속에 제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역풍을 안고 대략 8일 동안을 항해하였습니다. 폭풍우를 만났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견뎌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끌고 가는 선장의 어떤 친구의 배는 난파하여 한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 다 죽었습니다. 


폭풍우가 지나자 이번에는 우리에게 해적들이 나타나 우리 선장에게 “그들의 배를 끌고 가지 마라. 그들을 약탈하련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그들을 폭파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에게서 떠났습니다.

 

약 7일이 걸려(5월 28일)오송구(吳凇口)에 도착했습니다. 관가에서 포졸들을 보내 우리에게 어디서, 어떻게, 왜 왔는지를 질문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조선 사람이오. 큰바람이 우리를 이곳에 흘러오게 하였소. 배를 수리하러 상해로 가려 하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영국 배의 상관들이 우리한테 왔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우리는 조선 사람인데 선교사들을 모시러 왔다고 설명하고 동시에 우리를 중국인들로부터 보호해 주고, 또 영사관을 알려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들은 제 청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이고 포도주와 고기를 주며 저를 식사에 초대 하이었습니다.

 

오송에서 하루를 머무르며 그곳의 관리들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들은 많은 질문을 하였고, 또 황제에게 고발하여 우리를 육지로 조선에 돌려보내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저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두 민족 사이의 관례를 모르지 않소. 하지만 육지로 해서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소. 황제에게 우리의 도착을 알리는 것도 원치 않으니 그에게 보고하지 마시오. 그러나 황제에게 보고하든 안 하든 내게는 별 상관이 없소. 배를 고치면 나는 조선으로 돌아갈 것이오. 


그러니 우리 때문이라면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시오. 당신들은 내가 당신들 제국 해안에 상륙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되고, 나는 당신들 지방의 물을 마시고 그 땅을 밟기만 하면 되오. 다만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싶소.

 

이 밖에 또 조선 배가 배를 수리하러 상해로 갈 것이니, 상해 관장은 그 배 때문에 불유쾌하게 생각하거나 염려하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상해 관리에게는 그 배가 방해나 어떤 불안 같은 것들을 겪지 않고 머무를 수 있게 허락해 주도록 그 관리에게 편지를 써 주기를 부탁하오.” 


관리들은 제가 영국인들과 교섭하는 것을 본 후에 “저 사람은 조선 사람인데 어떻게 영국인들과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고 그들 말을 알아듣는가?”라면서 대단히 놀라워했습니다.

 

오송에서 출범하여 상해 항구로 들어갔습니다. (6월 4일). 두 영국인이 와서 그들과 같이 가자고 청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배를 중국인 안내자에게 맡기고 영국인들의 작은 배로 내려가 타고 상해로 인도되었습니다.

 

거기서 영국인들에게 저를 영사에게로 인도할 안내자를 청하였습니다. 아서, 존 엠슨(Arthur John Empson) 이라는 영국인이 프랑스 말을 할 줄 알아서 저를 위해 영사에게 편지를 써 주었습니다. 


영사로부터 우대를 받고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설명하고 또 우리를 중국인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페레올 주교님이 영사에게 우리의 도착을 미리 알려 놓았고, 또 우리를 보호하도록 부탁하였으므로 영사는 이미 우리가 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후 신자들한테로 와서 거기서 이틀을 기다렸더니 고틀랑(Gotteland) 신부님이 오셨습니다. 그 신부님에게 580원(즉 580pataca)을받았는데,400원은 중국인 인도자에게 주고 약 30원은 신자들을 위해 썼습니다.

 

그러는 동안 상해의 관리들이 부하들을 조선인들에게 보내 많은 질문을 하게 하였고、수비를 두어 밤에 감시하게 하였습니다. ‘타오태(Taottai)도 직접 부하들을 거느리고 배를 보러 왔으며, 돌아가서는 쌀 스무 말과 고기 스무 근을 보냈습니다.

 

배로 돌아오니 교우들이 당황해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관리들이 그들에게 많은 질문을 하였고, 또 중국인 수천 명이 구경하러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관리들은 제가 배로 돌아온 것을 알자 부하들을 보낸 이유, 각자의 이름과 나이와 체류지 등등을 묻게 하였습니다. 


저는 아주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관리들에게 다시는 사람들을 보내 저를 귀찮게 하지 말아 달라고 충고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쌀과 고기를 돌려보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일과 귀찮은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한두 번 관리들을 찾아갔었습니다. 상해의 관리들은 모든 것을 송강부(松강府) 관리에게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관리는 저를 알고 있으며, (아마 제가 세실씨와 함께 있을 때 저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제가 상해에 마음대로 머물러 있어도 좋다는 회답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호기심에서 중국인들이 너무 몰려들었기 때문에 저는 몽둥이로 그들을 물러가게 하였고, 저에게 불법적으로 행동한 관가의 어떤 부하들은 말로 꾸짖었습니다. 이들은 그들의 관리들에게 처벌을 받았습니다.

 

상해 주민들은 저를 큰 인물로 생각하고 있고, 관리들은 제가 영국인들과 친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쿠쿠애(Koukouai.)’라고 하며, 많은 것에 대해 의심스럽게 곰곰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관리들이 사람을 보내어 우리가 언제 떠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에게 “나는 배를 고치기 위해 아직 여기에 더 머물러 있어야 하오. 게다가 고관인 프랑스인 세실이 곧 이곳에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으므로 그를 만나기 위해서도 남아 있고 싶소.”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관리들은 우리가 출발할 날을 무척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직을 잃게 될까 두려워 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자세히 설명해 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럴 시간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만 줄입니다. 이미 배는 다 수리되었고 지금은 종선을 만들고 있습니다. 모두들 주님 안에서 잘들 있습니다. 


조선의 주교님 도착을 날마다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국 영사도 잘 있고 우리를 매우 잘 돌보아 주고 있습니다. 베시 주교님은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는데 도중에 병이 나셨습니다. 남경에 작은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사공들과 조선 포교 지를 위해 수고를 많이 한 분들을 위해 신부님께 상본과 패(牌)들을 청합니다. 그 밖에 학자 성 토마스, 가롤로, 우리 주님의 양부이신 성 요셉, 성 요한 사도의 상본 들과 십자가 상본 들을 청합니다. 


신부님을 위해 조선 물건들을 좀 가지고 왔습니다. 지금은 보내드릴 기회가 없습니다. 주교님이 오시면 보내드릴 수 있을 것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조선 포교지로 보내실 물건들은 모두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아는 신부님들에게 편지하실 때 제 인사를 전해 주십시오. 신부님께 벌써 편지를 올려야 했으나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못 하고, 게다가 고틀랑 신부님이 여기에 있는 보고서들을 한번 읽어 보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조선에서 팔 만한 물건은 갖가지 색깔, 특히 흰색의 서양 포목과 여러 가지 색깔의 명주, 갖가지 색깔, 특히 붉은색과 녹색의 천, 중국 포목과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교우들이 신부님께 인사드립니다.

 

공경하올 신부님께 부당하고 무익한 아들 김해 김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추신

페레올 주교님께 간단한 편지를 쓰겠습니다. 만일 그곳에 계시지 않고 출발하셨다면, 신부님께서 그 편지를 읽고 적당히 처리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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