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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열네 번째 서한 살펴보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나무 작성일21-08-22 18:29 조회1,357회 댓글0건

본문

 

 

 발신(작성)일

 발신(작성)처 

 수취인 

  수취일 

 비고

 첫 번째 서한

 1842. 2. 28

 마닐라

 르그레즈와

 미상

 

 두 번째 서한

 1842.5월경 

 주산

 리브와

 미상

 유실

 세 번째 서한

 1842.9월경 

 상해

 리브와

 1842. 9.27

 

 네 번째 서한

 1842.12.9

 요동 백가점 

 르그레즈와

 1844. 2.27

 

다섯 번째 서한 

 1942.12.21

 요동 백가점

 리브와 

 1843. 10.9

 

여섯 번째 서한 

 1843. 1.15

 요동 백가점

 르그레즈와

 1844. 2.27

 

일곱 번째 서한 

 1843. 2.16

 요동 백가점 

 리브와 

 미상

 

여덟 번째 서한 

 1844. 5.17

 몽골 소팔가자 

 리브와

 1844. 9.29

 

아홉 번째 서한 

 1844.12.15

 몽골 소팔가자

 페레올 

 미상 

 

 열 번째 서한 

 1845. 3.27

 서울 돌우물골 

 리브와 

 1845.10.14

 

 열한 번째 서한 

 1845.4.6

 서울 돌우물골 

 리브와

 미상

 

 ​열두 번째 서한 

 1845.4.7

 서울 돌우물골

 리브와 

 미상

 

 열세 번째 서한 

 1845. 6.4

 상해 

 리브와

 1845.7.23

 

 열네 번째 서한

 ​1845. 6. 4

 상해

 페레올

 1845.7.23

 

 


< 열네 번째 서한 작성 배경>


페레올 주교에게 보내는 열네 번째 서한은  '훈춘 기행문'이라고 할 수 있는 아홉 번째 서한과 연관이 있다. 즉, 훈춘쪽으로는 선교사 영입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의주 쪽 변문으로 조선에 잠입한 김대건이  평양을 거쳐 서울에 도착했으며  지금은  배를 이용하여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상해에 와서 페레올 주교를 기다리고 있다는 간략한 내용이다. 


하지만 많은 일로 분주하여 많은 것을 보고 드리지 못한다고( 서한집 133쪽 ) 히였다. 열여섯 번째 서한에서 자세한 설명이 있겠지만,  상해까지의 항해가 너무나 힘들었고  중국 땅에 도착해서도 입국 절차로  어려움을 겪었으니 아무리 담대한 성품의 김대건이라도  향후 페레올 주교님을 모시고 또다시 조선으로 가야 하는 여정을 생각하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 열네 번째 서한 전문>

 

조선 대목구장 페레올 주교님께

상해에서,1845년 6월 4일)

 

 

지극히 공경하올 주교님!

 

 

지극히 존엄하올 주교님과 변문(즉 책문)에서 하직한 후, 저녁 무렵에 의주에 도달하였습니다. 거기서 밀사들을 먼저 보내고 저는 혼자서 밤에 강을 건너 관문(關問)을 통과하는 데 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음 닷새를 소비하여 평양이라는 도시에 다다랐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서울까지 무사히 여정을 마쳤습니다. 서울에서는 신자들로부터 영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피곤한 일들로 인하여 여러 차례 병을 앓았습니다.

 

지금은 11명의 신자와 함께 배로 상해에 와서, 지극히 공경하올 주교님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일로 몹시 분주하여 많은 것을 보고 드리지 못합니다.

 

지극히 존엄하올 주교님께 조선인 김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참고>


* 본래 이 서한에는 발신일이 적혀 있지 않지만 내용으로 볼 때 

  열세 번째 서한과 같은 날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


* 김대건이 여러 가지 피곤한 일들로 인하여 여러 차례 병을 앓았다는 내용은

  열번 째 서한에 기록한 것들이다. 


  즉, 서울에 잠입한 김대건은 어머니조차에게도  귀국 소식을 전하지 못하였고 

  조정에서는 김대건이 마카오에 간 사실을 알고 귀국 즉시 잡아 죽이게 되어 있었다.

  김대건의 마카오 유학을  조정에 밀고한 사람은 김순생 (김여상)이었다.

  

  며칠 동안 방안에 갇혀 있다가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근심 걱정으로 마침내 병에 

  걸렸다. 보름 동안 앓고 난 후엔 또 눈병이 생겼다.   (김대건 서한집 116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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