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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열두 번째 서한 살펴보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나무 작성일21-08-20 09:19 조회1,359회 댓글1건

본문

 

 발신(작성)일

 발신(작성)처 

 수취인 

  수취일 

 비고

 첫 번째 서한

 1842. 2. 28

 마닐라

 르그레즈와

 미상

 

 두 번째 서한

 1842.5월경 

 주산

 리브와

 미상

 유실

 세 번째 서한

 1842.9월경 

 상해

 리브와

 1842. 9.27

 

 네 번째 서한

 1842.12.9

 요동 백가점 

 르그레즈와

 1844. 2.27

 

다섯 번째 서한 

 1942.12.21

 요동 백가점

 리브와 

 1843. 10.9

 

여섯 번째 서한 

 1843. 1.15

 요동 백가점

 르그레즈와

 1844. 2.27

 

일곱 번째 서한 

 1843. 2.16

 요동 백가점 

 리브와 

 미상

 

여덟 번째 서한 

 1844. 5.17

 소팔가자 

 리브와

 1844. 9.29

 

아홉 번째 서한 

 1844.12.15

 소팔가자

 페레올 

 미상 

 

 열 번째 서한 

 1845. 3.27

 서울 돌우물골 

 리브와 

 1845.10.14

 

 열한 번째 서한 

 1845.4.6

 서울 돌우물골 

 리브와

 미상

 

 ​열두 번째 서한 

 1845. 4. 7

 서울 돌우물골

 리브와 

 미상

 

 


< 열두 번째 서한 작성 배경>


김대건의 열두 번째 서한은  당시 조선의 정치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어느 정권이나 파벌 싸움은 존재하기 마련인데 조선 왕조의 당파 싸움은 제14대 왕 선조 때부터  두드러졌다 . 


선조 왕 때의 공신 세력과 새로운 주자학파 사이에 정치 싸움이 시작되었고 지방, 학문, 나이, 계급과 시국을 보는 시각에 따라 이합집산이 계속되어 왔다. 제21대 왕 영조의 탕평책으로  당파 싸움은  좀 잠잠해 지는 듯 하였으나 또다시  사도 세자 죽음으로 의견이 갈라져  크게 시파(時派)와 벽파(僻派)로 나뉘었다.


시파는 안동 김씨 세력이며 천주교에 유화적이었고 벽파는 풍양 조씨 세력으로 천주교에 적대적이었다. 기해박해(1839)는 벽파가 시파를 응징하기 위해 일어난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겉으론 천주교를 사학으로 치부하여 금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시파와 벽파의 당파 싸움이었고 천주교는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김대건 부제가 조선에 입국했을 당시에는 벽파가 득세하고 있었다. 신정왕후(효명세자 비)의 아버지 조만영과 그의 동생  조인영은 과 함께 신자들을 가혹하게 박해하고 선교사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당시 조정의 대신들은 프랑스 선교사 세 분의 죽음으로 프랑스가 보복할 것을 두려워 하고 백성들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해 하였다.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신자 수는 줄지 않고 도리어 증가하여 최소한 1만 명은 유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김대건은 신자들의 기운을 회복시켜주고 외교인들을 입교시켜 줄 선교사 신부님들을  하루 빨리 모셔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선교사 영입은  북방 진입로를 이용하거나  상해로 가는 뱃길을  준비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렇지만 김대건은 준비할 것은 많은데 병으로 허약해져 있는 자신을 안타까워하며 주님께 기도를 드린다.


김대건은 메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를 영입하기 위해  신자들이 북방으로 출발할 계획을 세웠고  직접 상해로 가는 배를  준비하고 있으며 신학생 두 명도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을  스승인 리브와 신부에게 전한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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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건 부제가 그린 조선  전도 . 


 

 



<열두 번째 서한 전문>

 

 

예수마리아 요셉

리브와 신부님께

(서울 에서),1845년 4월 7일

 

조선 왕국의 대신들과 관장들 사이에는 어떤 계통, 즉 파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다만 공연한 이름 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 하나는 벽파라 하고 하나는 시파라 하는데, 서로 반대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이 두 파가 서로 대립하는 근본 이유는 각각 다른 의견을 서로 주장하는 데 있습니다.

 

이 당파 싸움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으나 지금은 가볍게 볼 수 없는 문제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파 사이에는 시기. 비난. 논쟁. 학살 등이 연출되어 서로 도발하고 고발하여 서로 내몰고 귀양 보내기에 급급합니다. 


그들 당파는 다시 노론(後論) 즉 북인(北人)과 남인(南人)의 구별이 있어 각각 다른 당파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노론은 벽파와 손잡고, 남인은 시파와 손잡고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 그렇지 않은 예도 있기는 있습니다. 천주교는 시파에서는 용인되고 있으나, 벽파에서는 배척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벽파는 천주교를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김 대왕대비 즉 현 임금님의 조모는 시파에 속하고, 젊은 대비 즉 현 임금님의 모친은 벽파에 속합니다. 그리고 대신들의 대부분은 벽파입니다. 그리하여 벽파가 시파에 반대하여 궐기하기를 원하는 때에는 그들의 모든 의견을 배척하는 동시에, 무엇보다도 무죄한 천주교 신자들을 근절할 행동을 취하므로, 여러 번 박해가 일어나 많은 순교자를 내게 되었습니다.

 

지금 천주교의 제일 큰 적은 조만영(趙萬永)인데, 그는 젊은 대비의 부친입니다. 그가 오늘날 이 나라 정치의 최고 권력을 잡고 있으며, 그의 동생 조인영(趙黃永)은 영의정이고 그의 아들은 병조 판서입니다. 최근에 일어난 박해는 모두 다 주로 조만영과 조인영의 계획으로 벌어졌는데, 신자들을 가혹하게 박해하고 신부님들을 죽이라고 명한 자도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신들은 신부님들을 죽이고 나서는 프랑스 사람들이 군함을 타고 들어와 그들에게 복수할까 봐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모든 백성은 나라에서 무죄한 피를 너무나 많이 흘리게 하였으므로 필연코 전쟁이 일어나 온 나라가 큰 재앙을 입을 것이라 단정하고 떠들어대고 있으며, 지금은 전쟁을 기다리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국법대로 하면 외국인들은 죽일 수가 없고 오히려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중국인들, 달단인들, 일본인들은 필요한 것들을 주어서 반드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들을 죽인 것은 확실히 종교 때문에 죽인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신부님들이 조선에 온 것을 교황님과 프랑스 왕이 파견해서 온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들을 죽인 후에, 매우 무서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포졸이 하는 말을 들으면, 우리 정부가 신부님들을 죽임으로써 프랑스 왕을 모욕하는 불경죄를 범한 것인데, 한편 그들은 일찍이 영국인들로부터 서양의 왕들은 자기 백성이 피살된 경우에는 전쟁을 일으킨다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생각으로 번민하고 있던 우리나라 대신들은 함선들이 해변으로 지나간다는 보고를 듣고, 사실은 영국 함선 들이었는데 프랑스 사람들이 신부님들의 살해를 보복하러 온 줄로 여기고 떨고 있었으며, 또한 백성들도 서양 함선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프랑스 측에서 이미 여러 해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프랑스라는 나라는 믿었던 것보다 별로 무서워할 것이 못 되는 나라라는 근거 없는 그릇된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모든 공포를 떨치고 또다시 신부님들을 죽일 준비를 하고 있으니, 만일 대신들을 저들 마음대로 내버려 둔다면 신부님들이나 우리 신자들이나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실상 왕은 이런 일에 대하여 대체로 무죄합니다. 하느님께서 섭리하여 주소서!

 

만일 프랑스 군함이 조선에 온다고 할지라도 신부님들을 살해한 사건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신자들의 처지가 더욱 참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정부에서 우리가 귀국하는 대로 사형에 처할 작정으로 세밀한 주의를 기울여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그들 가까이에 있어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경계도 충분하지는 못한 듯합니다. 그러니까 만일 제가 조선에 돌아온 줄을 대신들이 알게 되면 즉시 사방으로 수색할 것입니다.


신부님들이 순교한 다음에도 신자들은 2년 동안 박해를 더 받았습니다. 지금은 4년 전부터 안온한 상태에 있는데, 신자들의 기운을 회복시키고 외교인들을 입교시키며 모두를 완성해 줄 선교사 신부님들을 하루빨리 조선에 모시기를 모두가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신자 수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으며, 신자 수는 신부님들이 순교한 후 오늘까지 줄어들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증가하여 최소한 1만 명은 될 듯합니다.

 

외교인들은 우리 종교의 진리를 깨닫고 하느님께로 귀화하는 사람이 매우 많으며, 그중에는 몇 마디 권고를 듣고서 즉시 입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전부터 우리 종교의 진리를 들어 보고자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으니, 지금 누가 용감히 나서서 그들에게 전교만 하면 종교를 수용할 사람이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신자들 10명은 아직 감옥에 갇혀 있고, 5명은 귀양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왕의 조모 김 대왕대비(순원왕후)는 아직 생존해 있으나, 여러 가지 고통으로 번민하여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으려고 불교를 신봉하고 있습니다. 대왕대비가 사망하면 우리 신자들에게 큰 환난이 닥쳐올 것입니다. 왕은 건강하지만, 왕위에서 쫓겨날 위험이 있답니다. 대신들은 어느 날 밤에 회의를 열어 왕을 치우고 그 대신에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우려고 모의하였다고 합니다.

 

왕(철종)은 19세 된 젊은이이지만 상당히 신중하고, 얼굴에 병으로 인한 흔적이 많이 있으나 코가 높고 얼굴이 못생기지 않았습니다. 먼젓번 왕비가 사망한 후, 15세 된 홍 씨를 새 왕비로 맞아들였습니다. 


우리 교회를 박해하는 대신들인 조만영과 조인영은 아직 살아 있어서 대단한 권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비 신자인 2품 대신 김정의(즉 김정희) 판서는 아직 귀양에서 풀려나지 못하였습니다. 조선 백성들은 평화를 누리고 배불리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 소문을 많이 퍼뜨리고 있습니다.

 

배반자 김여상(즉 김순생)은 귀양살이하면서 아직 첩과 함께 살아 있다고 하는데, 그 역시 많은 혹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특히 포졸들과 관장들은 그를 미워하여, 있는 힘을 다해서 그를 매질하면서 “이놈아 너는 유다보다 더 악한 놈이야. 유다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러 오신 예수 님을 배반하였다 하거니와, 이놈아 너는 살려고 조선에 온 신부님들을 배반하여 죽였으니 너는 인간이 아니야.”라고 엄히 꾸짖었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 눈병이 낫지 않았고 그동안 중병에 걸려 몹시 앓았으나, 요사이는 회복되어 허약한 머리를 진정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할 일은 태산같이 많으나 몸은 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 마음은 간절하지만 한 일은 미미합니다. 


현재를 위해서나 장래를 위해서나 이곳 형편을 위해서, 북방의 길을 열어 놓는 일이나 강남(江南)으로 출발할 일을 생각하면 제가 준비해야 할 것은 산더미처럼 많지만, 병으로 허약해진 몸이 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병중에 무능해진 저는 다만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뿐입니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저는 지금 14세 된 학생 두 명을 가르치고 있으며, 또 다른 이 두 명을 지명해 두었으나 아직 저에게로 오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제가 병중에 있으나 가능한 대로 강남으로 가는 길을 준비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출발할 예정입니다.


그뿐 아니라 신자들은 올해에 메스트르 신부님과 토마스(즉 최양업 부제)를 영접하기 위하여 북방으로 출발할 것입니다. 중국 배나 서양 배편으로 무엇을 조선에 보내는 것은, 그 배들이 오면 조정에서 곳곳에 군졸들을 배치하여 조선 사람들이 그 배에 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감시할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라고 신부님에게 말씀드립니다.


신부님께 조선종이 20장이 들어있는 봉투, 조선 그림 석 장이 들어있는 작은 봉투, 병풍이라고 하는 여덟 폭으로 된 그림, 밤에 사용하는 놋그릇(놋요강), 신부님들의 유해, 누런 주머니 세 개, 조선 지도, 빗 세 개와 빗을 청소(㷌徐)하는 기구, 붓을 쓸 때 붓끝만 풀어서 쓰는 붓 네 자루, 돗자리 하나를 보내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공경하올 사부님께 가장 순명 하는 불초 김해 김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댓글목록

나무님의 댓글

나무 작성일

신정왕후(1808-1890) 조씨

조선 제23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익종)의 부인.

효명세자가 순조를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할 때 풍양 조씨 세력은 그동안 세도를 부린던 안동 김씨 세력을 잠재우려 하였으나  효명세자가 4년 만에 죽고 제 24대 헌종이 즉위함으로써  또다시  안동 김씨가 권력을 잡게 된다.

이에 신정왕후는  은인자중하며 기다리다가 제25대 왕 철종도 죽게 되자 드디어 왕실의 최고 어른으로 나서서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이재황을  제26대 고종으로 보위에 앉히고  수렴청정을 하였다.

신정왕후는 남편이었던 효명세자가 뜻을 이루지 못했던 정치 개혁을 마음에 두고 있다가 고종이 즉위하자  흥선 대원군의 정치 개혁에 협조하였으며 이 와중에 철저한 쇄국 정책을 썼던 흥선 대원군은 선교사들을 서양 앞잡이로 인식하여 천주교를 탄압하였다.

결국 1866년 천주교 신자 8,000명이 학살되고 프랑스 선교사 9명이 처형되는 병인박해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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