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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아홉 번째 서한 살펴보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나무 작성일21-08-12 20:34 조회1,537회 댓글0건

본문

 

 발신(작성)일

 발신(작성)처 

 수취인 

  수취일 

 비고

 첫 번째 서한

 1842. 2. 28

 마닐라

 르그레즈와

 미상

 

 두 번째 서한

 1842.5월경 

 주산

 리브와

 미상

 유실

 세 번째 서한

 1842.9월경 

 상해

 리브와

 1842. 9.27

 

 네 번째 서한

 1842.12.9

 요동 백가점 

 르그레즈와

 1844. 2.27

 

 다섯 번째 서한 

 1942.12.21

 요동 백가점

 리브와 

 1843. 10.9

 

 ​여섯 번째 서한 

 1843. 1.15

 요동 백가점

 르그레즈와

 1844. 2.27

 

 일곱 번째 서한 

 1843. 2.16

 요동 백가점 

 리브와 

 미상

 

 여덟 번째 서한 

 1844. 5.17

 소팔가자 

 리브와

 1844. 9.29

 

 아홉 번째  서한 

 1844. 12.15

 소팔가자

 페레올 

 미상 

 

 

  

  ​< 아홉 번째 서한 작성 배경> 

 

아홉 번째 서한은 김 안드레아 부제가 페레올 주교에게 보내는  '훈춘 기행문' 형식의 서한으로, 원래는 한문으로 작성했으나 현재는 프랑스어로 번역된 문서만  남아 있다.

 

페레올 주교는 184425일부터 약 두 달 동안,  북방을 통한 조선 입국의 길을 탐색하기 위해 김대건과 중국인 교우 1명을  훈춘으로 가도록 했다.  이들은 몽골 소팔가자에서 썰매를 타고 장춘으로 갔다가 만주 지방으로 들어갔다.

 

김대건이 만주에서 처음 도착한 도시는 송화강 동쪽에 있는  길림이다. 여기서 곧바로 장백산맥을 넘으면 조선 땅이지만 길이 뚫려 있지 않으니  영고탑 방향으로 걸어서 목단강가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중국인 교우 객줏집을 만나서 숙박과 음식을  무료로 대접 받고 맹수가 우굴거리는 산길을 걸어 진주문이라는 마을에 이르렀을 때는 음력 설 즈음이었다. 

 

김대건은 미신을 믿는 중국 설 풍경도 보고, 또 저 세상 갈 때 필요하다는 종이돈을 뿌리며 장지로 가는 장례 행렬도 보면서  저 세상에서 쓰일 진짜 돈은 신앙과 선행이라고 생각했다.

 

객줏집에 타고 온 썰매를 맡기고 대신 말과 마차를 빌려 마침내 훈춘에 도착한 것은  소팔가자를 떠난 지 대략 한 달 만의 일이었다.  훈춘은 조선과 만주를 갈라 놓는 두만강 어귀에 있고 조선과 중국 사이의 접촉이 이뤄지는 곳이다.

 

훈춘에서 40리 떨어진 함경도 경원에서 조선과 중국의 교역이 2년에 한번, 그것도 5시간 동안만 열린다.(경원 개시)  김대건은 조선의 쇄국 정책으로  다른 나라의 문물을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 하였다.  

 

! 인류 대가족의 공동의 아버지인 성부께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전하신 그의 사랑 안에 모든 자녀를 품으실 날이 언제 올까요? ” (김대건 서한집 102쪽 참고)

 

김대건은 이 여정 중에 페레올 주교가 지시한 대로 주변 정황과 선교 대상지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기록하였다.  

 

만주 지역은 땅이 비옥해 보였고 중국 청 왕조의 발상지 임에도 인적이 드문 황무지가 된 것은 누루하치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 왕조를 건설하면서 만주인들을 모두 북경 쪽으로 이주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김대건은 함경도 경원에서 교역할 수 있다는 통지를 받고 미리 약속한 조선인 교우 연락원을 만났다.  그들에게서  조선의 실상을 들으며 선교사를 입국 시키기에는 훈춘보다는 의주 쪽  변문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페레올 주교에게 이런 상황을 편지로 보고하였으며 지금의 간도 지역에 분포된 우킨족, 유피타체, 다초수 부족의 실상도 적었다.

 

조선인 교우들과 헤어져 다시 되돌아 오는 길은 얼음이 녹아 위험하였다.  김대건은 조선 교회의 수호천사와 조선 교회 순교자들의 기도에 의탁하며 두만강을 건너 소팔가자로 되돌아 왔다.

 

아홉 번째 편지에서 김 안드레아 부제가 보낸 것으로 되어 있는데, 훈춘을 다녀온 것은 부제품 받기 전의 일이었다.

 

<참고>

 

장백산맥

중국의 만주 지방 남동부, 우리나라와의 국경 부근에 펼쳐져 있는 산맥.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의 분수령을 이룬다. 요동반도에서  흑룡강과  송화강의 합류 지점까지 연결되고 길이는 1.300km. 주봉은 백두산(2.744m)대부분의 봉우리가 2,000m를 넘는다.  산맥의 주변은 중국 최북단 지역으로 용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등이 있으며 이들 지역을 통틀어 동북지구, 만주 지방이라고 하였다. 

산지 일대는 원시림으로 덮여 있어 산림자원 등이 풍부하며 철, 석탄 등 광물자원도 풍부하다. 

 

 

장춘(長春)

길림성의 성도. 

1799년 이후 청나라 조정에서 한족(漢族)의 만주 이주를 허가하면서 성장한 도시. 장춘의 서남쪽에 소팔가자 교우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길림(吉林) 

송화강 동쪽 강가에 있는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본거지로 길림성과 요녕성그리고 흑룡강성을 동삼성(東三省)이라고 한다. 

 

송화강(松花江)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강으로 길림성과 흑룡강성 등  중국 동북 지방의 비옥한 평원을 관통한다. 길이는 1,927Km

 

목단강(牧丹江) 

길림성과 흑룡강성을 흐르는 송화강의 여러 지류 중 가장 큰 강 

 

영고탑(寧古塔) 

청나라  만주 지방의 지명으로  

흑룡강성 목단강  중류 지역인  목단강시 영안현에  위치하였는데

1930년대 이후에는 길림성으로 옮겨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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