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 성 블라시오 주교 순교자, 성 안스가리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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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무 작성일25-02-02 22:38 조회57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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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블라시오에 대한 역사적 자료는 불확실하나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오늘날 튀르키예 시바스에서 의사로 활동했으며 가난한 이와 이방인에 대해 관대하여 백성들이 그를 주교로 선출하였다고 한다.
리키니우스 황제(308~324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카파도키아 총독에게 잡혀 산의 동굴에 갇히게 되자 동굴에서 야생 동물을 치료해 주다가 감옥으로 이송되었고 감옥에서도 치유를 원하는 이들에게 치료를 해주었다.
그러나 끝까지 우상 숭배를 거부해 총독의 명으로 혹독한 고문을 받고 마침내 316년경 2월 3일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성 블라시오에 대한 공경은 6세기에 동방 교회에서 시작되어 9세기경부터 서방 교회로 확산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십자군에 의해 서방 교회에 더욱 널리 전파되었다.
그의 축일에는 초 두 자루를 성 안드레아 십자가 (X)로 만들어서 인후(목)에 대고 축복하는 예절을 거행하면서 성 블라시오에게 인후병으로부터 그 사람을 보호해 주기를 청하는 기도문을 외우고 강복한다.
독일에서는 특별히 ‘14명의 구난 성인, Holy Helpers’ 가운데 한 분으로 공경을 받고 있으며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된 “로마 순교록”은 2월 3일 목록에 그의 순교가 기록되어 있다.
이비인후과 의사들의 수호 성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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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스가리오 주교
성 안스가리오는 801년 프랑스 아미앵 근교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어머니의 선종 후, 피카르디 지방 코르비의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맡겨져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814년경 성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였고, 823년 이후에는 코르비 수도원에 파견되어 교사 겸 설교가로 활동하였다. 826년에 덴마크에 선교사로 파견되었으나 큰 성과를 못내고 829년 스웨덴의 선교사로 파견되었다가 830년 프랑스의 왕 루트비히 1세의 명령을 받고 새로 설립한 코르비 수도원의 원장직을 맡게 되었다.
832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4세에 의해 함부르크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스칸디나비아인들과 슬라브인들에게 선교하라는 교황의 명을 받고 이를 훌륭히 수행하였다.
834년에 루트비히 1세는 성 안스가리오의 북유럽 선교를 도왔으나 840년 루트비히 1세가 사망하면서 활동 기반을 잃었고 845년에는 바이킹의 침입으로 13년 동안 선교 활동을 해오던 함부르크가 파괴되어 큰 좌절을 겪었다.
848년에는 브레멘-함부르크 대교구가 설립되면서 초대 대주교로 임명되면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지역에 대한 사목권도 함께 부여받아 다시 북유럽 선교 활동을 지휘하였다.
그는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최초의 선교사였다. 이러한 활동은 그의 놀라운 열정과 설교, 엄격하고 거룩한 생활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865년 독일의 브레멘에서 선종하였는데 그 후 스칸디나비아의 선교활동이 중단되거나 축소되기도 했으나 북유럽의 사도로 공경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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